천검독보행은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주인공인 능하운이 나오는 소설이다. 그냥 소설도 아니고 복수극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하는 주인공보다는 이미 변화되어있는 주인공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이 변화하면서 성장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나에게는 조금 힘든 소설이었다. 본래 복수극이라고 해도 그 복수를 위해서 초석을 다지는 과정이나 복수를 다짐했지만 인간적인 면에서 나태해지거나 방황했다가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모습을 보였다면 능하운의 감정에 좀 더 이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다고들 많이 말하지만 복수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15여년 만에 화경의 위치에 올랐다면 그야말로 웬만한 노력을 가지고는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영약을 먹더라도, 아무리 대단한 무공을 전수 받더라도, 아무리 대단한 스승을 얻더라도 화경의 경지에 15년 만에 다다른다는 것은 거의 로또 맞을 확률이 아닐까? 그리고 복수극의 중심이 ‘복수’라고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죽이고 죽이는 소설을 쓸 것이 아니라면 그 복수를 하는 주인공의 감정 묘사에 더 신경을 썼어야 하지 않을까. 복수극이라고 해서 무조건 복수 대상을 죽여서 얻는 통쾌함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그 복수를 하는 도중 겪게 되는 시련과 그것을 통한 성장도 서술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자신의 무위가 대단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고 해도 그것은 쓸데없는 거만함과는 다른 것인데, 여기에 나오는 능하운은 자부심이 강한 것이 아니라 단지 거만할 뿐인 새파란 젊은이처럼 보인다. 가족들을 잃은 과거가 있는 만큼 생각의 깊이도 다른 또래와는 다를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부모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을 보게 되면 자신의 부모를 떠올린다든지, 자신의 여동생 또래의 여인을 보면 여동생을 떠올린다든지 하는 식의 애틋함이 드러나지 않았다. 아무리 복수를 위해서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죽였다고 해도 조양장의 식구들에게 대했던 것을 보면 기본적으로 가족을 소중히 대하는 것은 똑같은데 말이다. 복수 대상에게는 잔혹할지라도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평범하게 대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가족과 가족이 아닌 사람이라는 이분법적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능하운의 사고방식은 마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으로만 사람을 구분하는 사회주의자와도 같다. 극단적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스물 둘의 나이로 그런 화경이라는 경지에 다다른 것에 대해서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소설에서 나오는 주인공이 강하지 않으면 그게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마는 주인공이 일방적으로 사람들을 학살하고 구타하는 그런 것보다는, 난관에 봉착했다가 그것을 이겨내고 한층 더 성장함으로써 더 높은 경지에 다가가서 결국에는 강해졌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경이라는 경지는 무조건 무력으로 강해서 다다르는 경지가 아니라고 어떤 무협소설에서든 역설하고 있다. 정신적인 강함과 성숙 또한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한 조건이다. 그렇지만 여기서의 능하운은 무력으로서는 화경의 경지에 이르렀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미성숙한 것 같다. 복수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잔인하게’ 행동하는 그 모습은 내게는 그저 자신이 가진 힘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힘이 대단하다고 해서, 배분이 높다고 해서 자신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이었다. 사람들에게 함부로 반말을 하거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무력을 휘두르는 것이 냉철하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쉽지만 천검독보행은 내가 읽기 힘든 소설이었다. 더 좋은 서평은 다른 분들이 쓰실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부족한 글을 여기서 줄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