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무제 - 까도남 영웅, 송인을 만나다!  

 

 

나는 지금 <천년무제>라는 책을 집어들어 다 읽었다. 그리고 나는 책 등을 맛없는 샌드위치처럼 우물거리며 송인에 대해 뭐라고 투덜거리는 중이다. 내가 어째서 고집세고 늙은 염소처럼 투덜거리는지는 내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송인 너무 싫어. 요즘 환타지 소설들은 다 나쁜 남자 신드롬에 빠졌나? 정의와 영웅은 어디로 간 거야!"

 

나는 정의로운 영웅을 사랑하고 나 자신의 욕구를 대리만족시켜주는 정의 구현에 열광한다. 그런데 이 남자는 대체 정의구현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다. 춘추전국시대에 살아서인가. 현실에 살고 있는 나보다 더 나쁜 쪽으로 현실 적응을 잘 한다. 환상소설의 주인공으로는 뭔가 '에러'라고 나의 까칠한 미의식이 거부한다. 당연히 영웅이 훨씬 환상소설에 적절하지 않은가. 그런데 송인 이 남자는 까도남이다. 까칠하고 도도한, 오만무례한 남자. 나는 드디어 이렇게 비통한 감상평을 외치고야 만다.

 

"이 도깨비 같은 놈은 어드메서 나온 거야!"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나와 같은 마음인가? 어느 대통령의 말마따나, 당신의 아픔이 내 마음에 느껴지는군요. 이 글은 당신과 나의 슬픈 감상에 대한 나 나름의 대답인 셈 되겠다.

 

소설이라는 화려한 무대 위에 뜨고 지는 수많은 소재들. 그 소재들 중에서 단연 스타라고 불릴 만한 소재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 소재들 중 단연 최고 스타라고 할 만한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영웅'이다. 인간이 이야기를 생각해 낸 이래 자신의 임금이나 국가의 시조, 혹은 어디서 들은 누군가의 위대한 이야기에 공상을 덧붙이면서 영웅들은 생겨났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 체계인 신화는 신들과 영웅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때의 영웅들은 결코 신은 아니되 인간보다는 우월한 존재였다. 이들은 흔히 국어 시간에 배우는 고귀한 혈통, 신이한 출생, 비범한 능력, 고난과 시련, 극복과 위업 달성이라는 영웅의 조건들을 모두 갖춘, 엄친아인지라 결코 신은 아니지만 - 신이 되려는 영웅은 결국 파멸한다 - 능력과 인성 면에서 신에 버금간다. 그러나 신화 역시 변화를 맞이하였고 신들의 이야기는 인간들의 이야기로 이어지게 되었다. 신과 연을 끊은 영웅들은 가장 먼저 해피엔딩을 보장받지 못하게 되었다. 홍길동은 완전한 해피엔딩인가? 결국 조선땅에서 살지는 못하게 되었다. 전우치는? 한 평생 도술로 재미지게 살다 갔지만 그의 한이었던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박씨 부인? 결국 두 왕자는 호국에 잡혀갔고 자신은 아들딸 낳고 살다가 남편과 한날한시에 죽어 승천했다. 심지어 아기장수는 부모님의 배신으로 두 번 죽었다. 신화시대의 기준으로 보아도 이들은 능력 면에서 전혀 떨어지지 않으나 완전한 해피엔딩, 즉 영웅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을 갖지 못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기까지 한다. 현대로 오면서 영웅은 완전한 해피엔딩 외에 그가 갖고 있던 온전한 전인격 뿐 아니라 능력마저 축소되었다. 심지어 서양의 영웅들은 작품 내에 존재하는 대중들에게는 외면당하거나 배척까지 받는 신세가 되었다. 우리는 그들을 다크 히어로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동양, 특히 한국 환상소설 중 영웅소설의 모습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무협 장르의 주인공 - 영웅들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가. 나는 그 변화의 일단을 송인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이 소설은 분명 영웅무협소설에서 주로 나오는 사건과 배경, 그리고 조연들을 갖고 있어 영웅 무협 소설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송인은 누군가의 구원을 바라는 몰락 가문의 영애를 만났다. 송인의 곁에는 악당들이 벌이는 사건들이 스쳐지나가며 조연들은 영웅들이 갱생시켜서 자신의 밑에 두기 좋아하는 하오문 출신들이다. 심지어 그의 첫 출현도 매우 영웅소설답다. 영화카피처럼 말하자면 '천 년전에 잠든 불패의 영웅, 깨어나다!'라고 할 수 있을 만하다. 흔히 보여지는 영웅 무협 소설의 전형적인 흐름과 장치들이다. 그런데 천 년 전의 절대강자 깨어나셨으면 어서 몰락 가문의 영애를 충성스럽게 보필하여 가문을 일으켜 주고 꽃미녀 영애와 함께 행복해야 하지 않은가. 악당들이 사건을 벌이면, 특히 영애의 발톱 한 자락이라도 바람 들게 하면 없는 내공도 긁어모아 악당들의 뒤의 뒤까지 캐어 자근자근 멸망시켜야 하지 않은가. 하오문의 문도들이 주변에서 얼쩡거리면 잡아다가 교장선생님 풍의 훈화나 남자의 눈물 한 방울 등을 동원하여 그 비루한 정신을 열혈 신참 기사 못지않은 충성과 정의로 넘치게 해 주어야 하지 않은가. 천 년 전의 비급과 같이 묻혀 있던 각종 보물들을 때에 맞춰 발굴해주어 막 악당의 손에 넘어가려는 영애의 장원과 가문에 묻지마 투자를 하는 넉넉함 역시 영웅의 미덕이며 자신의 무공 한 오라기까지 동원하여 연약한 부하들을 문파 시조 못지않은 실력자로 키워주는 위대한 스승으로써의 면모는 다 어디로 간 것인가. 송인은 단 하나도 하지 않는다. 영애는 팔아버린다고 사사건건 협박도 아닌 진담을 하고 하오문도 여러분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세작질을 적극 권면한다. 하오문도 조연들은 송인 곁에 있어서 교화되기는커녕 어둠의 지식을 더욱 쌓아가고만 있다. 또한 악당들을 진멸하기는커녕 자신의 귀찮음을 모면하기 위해 적당히 살려주고 돈을 받아낸다. 회심 가능한 악당과 개도 안 물어갈 악당을 가려 처단하는 복잡 미묘한 고수의 안목 대신 적 아니면 이용 대상으로 나누는 간단하기 그지없는 안목을 보여준다. 여인의 애교에 내던 화도 안 내기도 하는 한심한 모습 정도면 약과고 천 년 전엔 휘두르던 명검이고 비급, 야명주 모두 썩어버려 알거지에 가까워서인지 돈을 아주 많이 밝힌다. 천재이면 무어 하겠는가.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은 현재 세상에서 쓸모가 없고 그의 명검은 현세의 일개 철검만도 못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웅들의 전공필수과목인 검기를 이수하지 못한 주제에 꽤 강하고 가차 없다. 즉, 배경과 사건은 영웅무협소설의 그것인데 주인공 송인이 영웅이라고 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위의 글만 읽어 보면 영웅이 등장하는 무협소설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배경과 사건들 속에 송인이라는 까도남이 끼어 있는 셈인데도 그는 무리없이 사건을 이끌어가며 겉돌지 않고 있다. 그리고 글의 흐름은 주인공 송인의 행보에 따르고 있음에도 악이 승리하는 대신 비교적 합당하고 납득할 수 있게 흘러간다. 즉, 그는 과거의 영웅상에 합당한 인물이 아님에도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영웅이 맡았던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은 간단하다. 소설을 읽는 독자가 갖고 있는 ‘영웅’에 대한 기대와 관점이 달라졌으며 그로 인해 현대의 영웅상은 이미 과거의 영웅상과는 상당히 다르게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현대의 독자들은 영웅상이 생겨난 옛 시절의 독자들에 비해 상당한 교육을 받았으며 다양한 경험과 정보, 사람들을 접한다. 아는 놈이 더 머리 아프게 사는 법. 때문에 현대의 독자들은 소설을 읽을 때 옛 시절의 독자에 비하여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무언가를 간접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활동보다 자신이 가진 정보나 경험을 참조하여 이해하고 재창조하는 활동을 더 많이 한다. 따라서 소설 속의 영웅을 대할 때에도 그들을 다양한 면으로 파악하고 이해하는 활동을 하려고 한다. 헤라클레스가 한 수많은 영웅적인 활동에 경탄하는 것보다는 제우스의 아들이 갖는 인간적인 고뇌 - 존속 살해, 최고신의 아들로써의 딜레마 등 - 에 더욱 관심을 갖고 독자의 내면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이다. 자연 우월하고 지극히 선하며 대단하기만 해서 자연히 평면적이었던 영웅들은 다면적이고 깊이 있게 바뀌어가야 했다. 그리고 현대의 영웅들은 더 이상 윤리와 정보전달의 매개채이기보다는 소비의 대상에 더 가깝다. 영웅들의 활약상은 옛날에는 신들의 이야기로 다루어지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으나 현대에는 만화와 영화를 통해 주로 다루어진다. 만화와 영화가 된 영웅담은 이야기꾼의 입 대신 수많은 현대적 매체 - 특히 인터넷 - 으로 사방으로 빠르게 퍼져나간다. 그래서 현대의 영웅들은 더욱 많은 양의 모험을 더욱 빠른 속도로 해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수많은 독자들의 눈과 귀를 만족시킬 수 없다. 만족시키지 못한 영웅은 - 출판사 회의에서 ‘해고된다’. 옛적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가며 몇 백 년을 살아 숨 쉬던 전통적인 영웅담들이라 할지라도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면 출판되지 않거나 학문의 대상으로만 다루어진다. 독자와 접하지 못하는 글은 생명력을 급격히 잃어버리고 잊혀지게 된다. 해고당하고 잊혀진 끝에 먼지가 되지 않으려면 독자의 관심을 끌어 최대한 많이 소비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현대의 영웅들은 단순하게 멋지고 선한 것만으로는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없다. 그래서 현대의 영웅은 더욱 다양한, 때로는 고약한 개성과 성격들을 드러내고 여러분의 다정한 이웃으로써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인간적인 연약함을 지고 고뇌한다. 때로는 심지어 그들이 싸우는 범죄자와 그렇게 다르지 않은 광기를 가진, 모순적인 존재로써 묘사되기도 한다. 그러나 변화한 영웅들이 너무나 우리와 닮았다고 하여, 혹은 그들이 싸우는 범죄자들과 일견 다르지 않아 보인다고 하여 독자들이 그들을 영웅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제 대부분의 독자는 영웅의 행보가 영웅 자신과 시대의 보편적 가치에 기초하였고 그 행보의 결과와 과정 속에서 소설 속의 세계를 이롭게 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면 독자가 접한 영웅이 와치맨의 로어세크처럼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영웅으로 받아들인다. 독자 여러분들은 방금 지구 위로 추락하는 우주선을 번쩍 들어올린 누군가가 쫄쫄이 타이츠 대신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서 ‘Sit! So hot!’라고 외쳐도 영웅으로 보아 줄 만큼 복장규정 및 태도점수 기준도 완화시켜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이라고 하여 다르지 않다.

 

한국 환타지 소설의 몇몇 주인공들은 아예 영웅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조차 하다. 송인 역시 언뜻 보면 영웅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나름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세운 몇 가지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며 그 기준이 심히 괴팍할지언정 신념이 되어 외압에 굴하지 않는다. 그의 신념은 전쟁을 겪어온 자의 경험과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그가 춘추전국시대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법칙은 적자생존이 맞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반쪽의 이야기이다. 전쟁의 또 하나의 법칙은 전쟁은 전쟁을 하는 사람들끼리 한다는 것이다. 군인, 즉 생존의 기술을 배우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자들이 서로의 의지에 따라 죽고 죽이고 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전국시대의 기준으로 볼 때 악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의 기준으로 보아서도 악이었던 것은, 그래서 공자를 포함한 춘추전국 시대의 선인들을 탄식하게 만들었던 악은 전쟁이 정치가와 군인이라는 범주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코 전쟁을 원하지도 않았고 살아남기 위한 기술을 배울 기회도 여력도 없는 민초들이 무수히 희생당했다. 전쟁이 비정한 것은 당연하지만,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죽음은 전쟁 상황에서도 당연하지 않다. 그래서인가, 그의 신념은 적자생존을 기반으로 하지만 송인은 약할 수밖에 없는 자는 보호한다. 결코 약자 전반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약할 수밖에 없는 자, 특히 생존을 위한 배움의 기회조차 없는 아이들에게 그는 나름의 정을 베푼다. 그의 신념은 춘추전국시대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하지만 그는 자신의 시대가 가진 악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원래 시대는 험악한 것이니 약한 것들은 무조건 죽어도 된다는 방식의 적자생존은 송인 방식의 적자생존이 아니다. 그리고 송인은 스스로의 신념을 자신의 행보 속에서 이익이 있고 없고를 따지지 않고 실천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사람은 최대한 지킨다. 이 역시 전쟁의 산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모순으로 들리겠지만 춘추전국시대는 오로지 전쟁만으로 이뤄진 시대가 아니다.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천지를 위해 수많은 철학과 사상이 일어났으며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평화를 위한 노력이 계속 이어진 시기이다. (꽤 씁쓸한 역설이지만 전쟁은 죽음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평화 사상과 철학, 예술, 문학 등을 더욱 깊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곤 한다.) 송인이 자신의 신념으로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는 것도 그의 행보 중에 마을 사람들을 위해 금자를 쾌척하는 것도 그가 전국시대의 악을 겪고 그것을 결코 선으로 포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념이라는 부분을 놓고 볼 때 송인의 신념은 자신의 경험과 그의 시대인 춘추전국시대의 보편적 가치에 기초하였으며 송인을 이를 비교적 굳게 지켜나가고 있다. 즉, 그의 신념은 현대적 영웅상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송인이 그의 행보의 결과와 과정 속에서 세계를 이롭게 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완결까지의 행보를 추슬러 보아야 더욱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기에 본 고 안에서 섣불리 판단내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미 천년무제를 향한 악의 축들은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송인을 심히 건드리는 방향으로. 그렇다면 까도남 송인이 성격상 이들을 걷어치우지 않을 리는 없을 듯하다. 송인이 정의감으로 악당을 격멸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그의 행보는 작가의 펜을 따라 세상을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상의 내용으로 볼 때 송인은 전통적인 영웅무협소설의 배경과 사건 속에 자리한, 이미 변화한 현대식의 영웅이라고 일단 결론내릴 수 있었다. 앞으로의 작가의 행보 속에서 영웅에 대한 작가 고유의 시선과 변화된 시대의 영웅상이 충분하게 반영되어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