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0.


이야기의 구조가 매우 단순하여 집중하기 좋은 장점이 있다. 주인공의 과제는 총 3가지이다.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가족들을 위해 복수하는 것, 갑작스레 멸문지화를 겪은 지인 가문을 위해 복수하는 것, 사문의 유지를 받들어 천외삼신문의 발호를 막아 혈겁을 미연에 차단하는 것.


주인공은 절대적인 강함을 선보인 천외삼신문에 대적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비문파의 유일한 전인으로 20대 초반의 나이에 이미 전대의 (표면적)천하제일고수를 능가하는 절대고수이다. 배분 역시 현존 무림에서는 최고 수준이라 거칠 것이 없다. 아마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싶다.


분명히 여러 측면에서 거친 느낌이 있는 글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중심으로 감상을 진행한다.


1.


요즘 작품들의 트렌드인가? 서사 전개가 빠르고 시원시원하다. 호쾌하게 깨부수고 복수한다. 그러나 스피디한 진행 속에서 균형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리지는 않는다. 주인공에게 부여된 임무 3가지가 하나씩 차근 차근 진행된다.


가장 먼저 집안의 복수를 위해 하오문을 통해 정보를 모은다. 여기서 상당히 오랜 시간을 끈다. 준비는 철저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황 상 결국엔 들이닥쳐 깨부수는 것으로 해결을 봤지만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고, 이 잠시간의 기다림이 마음에 들었다.


본래 일이라는 것은 준비를 철저히 한 뒤, 한 번 시작한 다음에는 일단락 될 때까지 빠르게 몰아붙여야 하는 법이다. 공부도, 요리도, 운동도, 심지어는 단순 노동조차도 일의 전체 구조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치밀하고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막상 움직일 때는 몸을 날래게 놀려야 성과가 좋다. 이런 점에서 주인공 능하운의 호쾌한 행보는 칭찬할 만하다. 알아볼 만큼 알아본 뒤에는 조금도 시간을 끌지 않아 답답하지 않고, 결과도 만족스럽게 나왔다.


흑풍단을 때려잡고, 성운장까지 순식간에 쳐들어가는 것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동생을 찾기 위해 러시아까지 한달음에 달려가는 장면에서는 통쾌한 웃음이 나왔다. 설마 하니 러시아로의 여행마저 이렇게 일사천리로 마무리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 눈 팔지 않고 일 처리가 이렇게 분명한 사람과 일하는 것은 즐겁다. 한 두 번이야 피치 못할 사정도 있는 법이고 실수를 할 수도 있는 법이지만, 굳이 쪼지 않고 좋게 좋게 돌려가며 말하는데도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해서 일을 지지부진 이어가는 자들이 간혹 있는데, 같이 하기에 정말 피곤하다. 맡겨놓은 일의 성과를 도무지 신뢰할 수 없으니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을 지경이다. 능하운의 시원시원한 모습을 보니 문득 과거의 짜증났던 작자가 생각이 나서 비교가 됐고, 아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된다.


2.


고작해야 2권 초반 즈음 부모님의 복수를 완수하고 동생을 찾아낸다. 직후에 사라진 백가장의 사람들을 찾기 위한 밑 작업에 돌입한다. 눈 돌릴 틈도 없이 휙휙 지나가다가 다음 일을 시작할 때가 되자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시기를 재고 있는 것이다. 와중에 천외삼신문도 끼어들 것 같아 보이니, 이제 3권부터 천검독보행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읽어보건대, 장백산 작가가 독자의 입장에 서서 내용이 읽히는 호흡의 완급조절에 공을 기울인 티가 난다. 그리고 공들인 만큼 수월하게 잘 읽힌다. 그렇지만 그런 티가 난다는 것 자체가 아직 좀 더 개선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 아닐까. 경쾌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인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