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제왕 - Boy를 만나다!

 

 

1. Boy, Be a Legend!

 

이 책을 펼치고 다시 덮을 때, 폭풍의 잔향처럼 뇌리에 떠오른 말이다.  왜냐하면 이 책 <폭풍의 제왕>은 다른 슈퍼 히어로에 비하면 아직 'Boy'인 마운틴 콴이 운명처럼 자신의 잊혀진 혈통을 따라 마침내 진정한 제왕  -  마치 신화 속에서 회자될 법한  -  이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상 아직 가온에 가는 여정의 첫걸음 정도만 책에 소개되어 있지만,  책의 여러 복선을 감안할 때,  이 정도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예상할 수 있다.  이렇게 금방 넘겨짚어지는 스토리 라인은 지겹지 않을까 생각하며 벌써부터 책을 덮으려는 독자가 있을 법한데,  그런 분에게 기우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막 눈을 뜬 소년 같은 이 책이 매력적인 신화가 될 가능성은,  산적인 콴이 처음 밟은 바다만큼이나 탁 트여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저 이 까칠하고도 다정한 'Old Boy' 콴을 뒤쫓아 바람처럼 달려나가야 할 때이다.

 

 

2. Pluralitas non est ponenda sine neccesitate!

 

이 소설처럼 영웅전기물의 형식을 취하는 경우 보통 일대기적 구성을 취한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영웅적 인물의 탄생 순간부터 묘사하는 구조를 취하는데,  그 이유는 어린 영웅의 불행한 과거 행적이 성취할 업적을 감동적으로 빛내주고,  스릴과 갈등을 볼륨있게 하며 주제를 뚜렷하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모든 효과는 영웅적인 주인공을 입체감 있게 형성하여 독자의 감정이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시작하자마자 주인공이 이미 다 커서 나름의 업적(?)을 이미 이룬 상태였다.

<< 대륙의 등뼈이자 제국의 성지,  팔크스 산맥.  그곳은 또다른 말로 산적의 요람이라고 불린다.  마케로니아 왕국과의 국경이 있기 때문에 토벌도 어려운 이곳을 일통시킨 사내가 있었다.  역사상 최초로 산적을 일통한 사내,  마운틴 킹.>>

위 글은 첫 장의 내용을 약간 요약한 것이다.  보다시피 마운틴 콴이라는 입지전적인 인물의 과거사는 싹 잘려나간 상태이다.  어떻게 보면 책장을 펴자마자 애피타이저도 없이 본음식을 먹으라고 들이미는 생뚱맞은 프랑스 식당에 온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판타지란 원래 프랑스 음식 같은 책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한없이 심플한 일품요리랄까?  여러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강렬한 하나의 장점으로 모든 것을 상쇄시킬 흡인력 넘치는 존재이다. 그래서 작가는 오컴의 면도날  -  무언가를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중에서 가장 적은 수의 가정을 사용하여 설명해야 한다  -  처럼 아주 심플한 방법을 선택했다.  과거사로 인물을 그려내지 않고,  강렬한 이미지나 말투 혹은 산적이라는 직업과 별호 등으로 뚜렷한 색채를 부여했다.  마운틴 킹 콴,  산의 현자 탈라스,  황금거래자 킬란,  식신 스톤베어.  이름과 호칭을 나란히 놨을 뿐인데 벌써 가장 뚜렷한 성격이 눈에 들어온다.

간단하게 인물을 그려낼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선택하고 자칫 도입을 길게 만들 요소는 과감하게 뺀다.  1, 2권 내에 독자를 강하게 끌어당겨야 하는 판타지에 정말 어울리는 멋진 전략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작가는 주인공을 위해 다양한 사건에서 그의 성격을 디테일하게 그려낸다.  화전민들을 적당한 세금으로 보호해주는 장면,  피난인을 체계적으로 받아들이는 장면,  뺀질 거리는 부하들에게 욕과 주먹을 날리는 모습,  바우 노인에 의해 왕자인 것이 밝혀져도 변함없는 태도,  왕자라고 부른 수하는 밟을 지언정 플랫카드를 붙인 화전민들에게는 오히려 꽃다발까지 받아주는 태도는 그의 여러 가지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자연스럽게 사건을 전개시켜 나가는 좋은 장치들이었다.  또한 처음부터 강하고 거친 이미지로 거부감을 느낀 독자들에게는 이중적인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작가의 이런 先간단 後구체화 전략은 다른 인물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아직 1, 2권 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인물들은 그다지 깊이 있게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먹는 걸 좋아하지만 전투 때는 광폭한 스톤베어,  난독증에 걸린 현자 탈라스,  뒷돈과 뇌물을 좋아하지만 묘하게 바우 영감한테 약한 킬란,  서류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실을 사용한 암살에 천부적인 잭,  허풍 빼면 시체지만 대세를 읽는 안목이 넓은 디카프리오,  충성심 강한 귀족이면서도 순수하고 눈물 많은 바우 영감,  섹시하지만 영리한 나르샤,  그녀에게 휘둘리지만 실상 너구리파인 살리반.  쭉 늘어놓고 보니 하나하나 참 매력적인 인물들이 아닌가.  이 인물들의 의외의 면은 3권에서 감상할 수 있으리라 크게 기대해본다.

다만 이런 성격배정은 꽤나 작위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게 문제다.  하지만 그들의 과거 행적을 묻어두었기에 오히려 신비주의 전략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작가님이 그들의 백그라운드 스토리를 외전형식으로 묶어낸다면 독자들은 전혀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3. Instense love dose not measure, It just gives.

 

판타지 소설도 엄연한 문학이다.  때문에 강한 주제의식과 이에 결부되는 감동적인 사건은 필수이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유쾌한 편이지만,  몇몇 장면을 통해 묵직한 감동을 주고 있다.

<< 그들에게 이곳의 산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산적이 아니었다.  이웃이며 수호자이자,  병사이며 기사였다.  그리고 그 정점인 콴은 그들에게 있어 왕이었다.  "우리의 왕이시여."  마치 파도가 일렁이듯 모두가 그 자리에 엎드렸다.  슬픔 음성으로 이제껏 알고도 몰랐던 왕을 찬양하였다.>>

팔크스 제국과 마케니아 제국의 오랜 전쟁이 끝난 후,  내부 불만세력의 시선을 돌리고 황태자파로 굳어질 후계구도를 역전하기 위하여 2왕자가 팔트크 산적 토벌을 계획한다.  그로 인해 화전민들을 화살받이로 쓸 수 없었던 콴이 그들을 제국 측에 귀화시키려 할 때의 장면이 바로 위 글이다.  바우 영감이 아무리 왕자라고 불러도 귀도 안 기울이던 그가,  화전민들에게 왕이라 칭송받은 후에는 가온 제국의 왕위 계승권자라는 위치를 받아들인다.  그들을 버리고 도망갈 수도 있고,  강제로 내쫓을 수도 있을 텐데,  육만이나 되는 "식구"들을 데리고 가온 제국까지 가기 위해 온힘을 쏟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

마치 부모자식지간처럼 서로에게 당연하다는 듯 아낌없이 사랑과 관심을 주는 콴과 그의 "가족"들.  국정이 혼란할 가온 제국에 갈 그들이 걱정되지 않는 것은 이처럼 서로에 대한 강한 이타심과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 있기에 가능하다.

또한 후계가 없는 가온 왕실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대륙을 횡단하고,  10년의 세월을 무색케 한 집념으로 콴을 찾아온 바우.  그가 콴을 걱정하여 밥도 못 먹고 핼쑥해진 장면이나,  콴을 꼭 데리고 가고 싶으면서도 자신의 잘못된 고집을 꺾고 통곡하는 장면은 다른 어떤 장면보다도 마음 깊이 울렸다.  바싹 마른 얼굴을 해서도 콴만 보면 헤실헤실 웃고,  그러다가도 직언을 아끼지 않은 작은 노인네.  그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존재 때문에 더욱 콴이 부럽게 느껴지는 독자가 나 뿐은 아닐 것이다.

 

 

4. Good battle is objective and honest--never vicious or cruel.

 

역시 판타지는 액션씬이 참 중요하다.  특히 남성독자의 아성인 전쟁영지물은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최근 판타지들은 이런 액션신을 소홀히 여기거나 몰개성하게 그려내거나 인물에 어울리지 않게 그려내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이면 무조건 수련하고,  무조건 검기부터 뽑고 보는 판타지란 읽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또야?"라는 말은 항상 새로움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작가에게는 최악의 평가 아닐까.

<< 콴이 휘두른 기사의 몸뚱이가 다른 기사의 머리 위로 내리쳐지면서 둔탁한 파열음이 터졌다.  또다른 팔에 쥐어진 기사의 가슴팔에는 동료의 롱소드가 틀어박혔다.  (중략)  "잔인한 새끼."  "기왕이면 멋진 새끼라 해 주렴."  콴의 웃음은 기사를 분노하게 했으나,  선공은 콴이 먼저였다.  내리는 롱소드를 비틀어 잡아당기며 콴이 한쪽 주먹을 들어올렸다. >>

2황자파가 주도한 산적토벌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진기지화 되어가는 주변 영지를 공략하는 액션 장면의 일부이다.  호쾌한 것을 좋아하는 남성독자들에게 환영받을 만큼 자극적이면서도,  콴의 성격에 잘 어울리는 전투방법이다.  검기?  소드 마스터? 검법?  화려한 오라?  다 없다.  오로지 주먹과 발,  건틀릿과 완력 뿐-  물론 검을 배운 것도 같은데,  황태자와의 만남에서 잠깐 간접적으로 언급됐을 뿐이다.  이런 원시적인 액션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다만 인기를 위해서 더욱 잔인하게 표현하는 것만은 삼가주었으면 한다.  위의 장면도 조금 잔인하게 느껴지지만,  동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그들에 대한 분노가 완충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무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딱 좋은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이대로만 써주셨으면 좋겠다.  좋은 싸움은 정직하고 공정하며,  결코 잔인하지 않다는 점, 기억해주시길 바랄 뿐이다.

 

 

5. 그리하여, 다시, Boys, Be a Legend!

 

자, 그리하여 많은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들은 해적의 배를 타고 가온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이제 막 시작인,  청운의 꿈을 품은 젊은 주인공들만큼이나,  2권 밖에 나오지 않은 이 책도 젊다.  깔아놓은 복선은 이제 얽혀들 준비를 마쳤고,  인물들의 숨겨진 사연도 조금씩 속삭이려고 한다.  새로이 등장할 이국적인 배경들은 이제야 독자들에게 막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아직 이 책은 머나먼 가온까지의 뱃길만큼 갈 길이 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긴 여행길을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마운틴 콴과 그 친구들의 넘치는 패기만큼이나 힘이 있는 작가의 정열 때문이다.  이미 <강철의 열제> 전권에서 그 필력과 심력을 입증한 바가 있는 작가가 꾸준한 열정을 보여주리라는 것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이제 필자는 이정표처럼 꽂혀진 1, 2권을 쥐고 작가가 살고파 하던 세계로 힘차게 첫발을 내딛는다.  그 순간 필자도 작가처럼,  이 책처럼,  마운틴 콴과 친구들처럼 가슴 두근거리는 소년이 된다.  이제 시작이기에 우리는 모두 소년이 된다.  푸른 외침으로 모두에게 폭풍과 같은 응원을 보낸다.  소년들이여,  신화가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