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무림 - 촌부님, 10살은 젊어져서 돌아오다!

 

 

1. 어깨에 힘 좀 빼! 따샤!!

 

책을 딱 편 순간, 작가님이 주인공 한재선과 어깨동무하고 둥게둥게 넘출거리며 위의 대사를 외치신 것 같았다.   책장을 천천히 넘기는데,   10장도 못 넘겼는데도 머리 속이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어라......?   촌부님,   당신도 꽤 어깨에 힘 좀 들어가신 분 아니셨어요?   어제까지 신선처럼 담담히 도 닦으시던 분이 갑자기 왜 속세에 오셨대요?   것도 막춤 추며 놀러 오신 거 같은데요?’

책을 질끈 닫고 촌부님을 향해 경악해버린 나의 정신적 외침이,   촌부님 이름 하나 보고 이 책을 잡았던 여러 독자의 영혼과 함께 우주로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촌부님이 만일 문학적인 변화를 꾀하셨다면,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다. 변화가 아니라 변신이라고.   그것도 아예 강아지가 고양이로 둔갑하는 식의,   종이 바뀌어 버리는 대변신.

 

 

2. 내 새 친구가 어때!

  

그래도 한 번 집은 책은 다 읽어야 한다는 나의 굳은 결심 아래 다시 책을 폈다. 그런 나에게 촌부님이 한재선의 등을 툭툭 치며 말씀하셨다.

 

“여,  독자!  전무후무 공전절후 후안무치 마감도피 너닮았지 등등의 사자성어로 정의할 수 있는,   내 새 친구 어때?!”

 

......어떻긴요.   한 마디로 “오 마이 갓”인뎁쇼,   라고 한숨을 푹푹 쉬며 촌부님의 새 친구 한재선을 꼬부장하게 바라보았다.   무림맹의 백의검성과 마교의 혈견광의 내부사정으로 역사서와 교리서를 맡게 된 부분은 참 멋졌다.   뭔가 갈등이 엄청 많이 일어날 것 같은 발단 아닌가.   무림을 떨어 울리는 존재들의 선택을 받은 한재선이 누군지 궁금해서 신이 났었다.   도박판에서 전재산을 날린 보부상을 구하려고(실상 그런 의도가 아니었겠지만) 나서는 모습까지도 멋지고 그럴 듯 해 보였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 한 장을 다 넘기기도 전에 속옷까지 벗겨져 “아아..... 시발, 아아.......”라고 욕하는 모습은 가히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이 녀석,   아주 타고난 사기꾼이다.   찾아온 운풍자와 최유찬,   그 쟁쟁한 두 고수를 허세 하나로 속여넘기고 이중계약까지 했다.   왜 한쪽에게라도 솔직히 말하고 신변 보호를 요청하지 않았는지.   하는 짓은 영약한데 결정적인 데서 허술하달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중계약을 해어도 제 깜냥대로 오전에 무림맹 원고를 쓰고 오후에는 선린암에서 마교 원고를 작성하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일 년 가량만 쓰면 황금 200냥이 고스란히 자신의 것인데,   7일 만에 게으름을 부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무림맹의 담당자 운풍자를 속여 선인세를 떼어먹고 도주한다.   이쯤 되면 정말 외치지 않을 수 없다.

 

“오 하늘이시여! 어째서 하늘 아래 담당자를 내시고 또 다시 한재선을 내셨단 말입니까!”

 

저쯤 되면 거의 공공의 적, 아니 담당자의 천적 아닌가 싶다.

 

그 후 호구촌을 거쳐 운학산,  천문 금쇄진,  절벽,  나전현,  정양현,  관제묘,  항오관,  장가촌 근처의 관도,  주양현까지 거의 중원을 횡으로 돌파하면서까지 마감을 피하는 그 모습은 처절하다 못해 장절하기까지 하다.   처맞고 욕먹고 그러면서도 끈질기게 몇 번씩 탈출해내는 모습을 따라가면서,  이성적으로는 그 고생하고 천하에 전쟁을 일으키게 될 바에야 얌전히 양쪽에 원고를 해 주고 중립 선언이라도 해버리지 싶었다.  하지만 내 감성은 점차 다른 것을 외쳤다.   “하늘에 있으시다는 그물님, 성글다 못해 뻥뻥 뚫려주는 센스, 감사합니다!”라고 말이다.   이 터무니 없는 놈을 따라가다 보면 정말 통쾌하게 웃을 수 있다.   머리를 쌩쌩 굴리는데도 엄청 단순하고 귀엽게 비열하고 재능은 넘치는데 돼지 목의 진주라,   이 어리버리한 녀석을 미워할 수가 있어야 말이다.   게다가 이 녀석, 계육면 파는 상점 주인을 넌지시 도와주거나 도주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넘어진 마차 주인을 돕는 인정도 있다.   제법이다.   정말 미워하려고 했는데,   맘에 들어버렸다.   덕분에 계속 음모를 꾸미다가 한재선의 실수 때문에 불똥 제대로 맞은 성천 세력과 뜻하지 않게 목괴가 되어버린 무림맹의 소청호까지 너무나 귀여워 보인다.

 

 

3. 그래도 이야기 해줄 건 확실히 해줄게! Don't Worry!

 

한재선의 도주극을 펼치며 온갖 세력들이 서로 얽히는 과정은 우연적인 요소가 많다.   처음 도주할 때 하필 뛰어든 곳이 천문 금쇄진이라던가,   진 속에서 헤매다 날아간 옷을 쫓아간 장소인 관제묘에서 하필 집어먹은 것이 신단비고의 영약이라던가,   천문 금쇄진에서 기어나오고 있는데 하필 그 절벽을 최유찬이 수색하고 있다던가,   항아리 졸임을 당하다 도주한 끝에 살막이 함정을 파놓은 객잔에서 이도경을 피하려다 우연히 살아났다던가.

 

이런 우연성은 작품 전체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가 되겠지만,   역시 촌부님의 펜은 한재선의 회피본능에 물들지 않아서,   이런 우연성을 신비스럽고도 흥미로운 방법으로 상쇄하였다.   바로 천라지망 - 신의 안배이다.   선옹으로 짐작되는 운학산 노인과 점쟁이 도사로 인해 계속 강조되는 천라지망은 세계의 선한 필연을 의미한다.   하늘의 그물이 성글다는 것은 인과관계가 없다는 게 아니라 짐작하기 어려운 방향에서부터 인과가 실현된다는 점이다.   서로 다르게 보이는 사건들이 사실은 연결되어 있어서 한재선을 죽음에서 구하기도 하고 그의 사소한 행동이 세계를 구하기도 한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이로 인해 독자는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들을 하늘의 안배로 받아들이고 마음 속에서 필연을 찾아내어 사건에 개연성을 부여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 달라보이는 사건이 엮이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의문을 품지 않고 오히려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섬세함은 작가 촌부님의 실력과 정성으로 인한 것이리라.   서로 다르게 시작한 사건 하나하나가 사슬처럼 엮이는 것은 사슬갑옷을 한땀한땀 뜨는 장인의 노력과 다르지 않다.   솔직히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이 이미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아마 작가님의 머릿속을 잘 뒤져보면,   결말부분까지 다 나와 있을 지도 모른다.   촌부님의 담당자님한테는 참으로 홍복이 아닐 수 없겠다.

 

소제목도 참 재밌고 의미심장하다.   맨 끝 챕터의 제목은 <뭘.....?>이다.   이 제목에 대해 설명하자면,   책 중반에서 점쟁이 노인이 북쪽에서 온 여인을 꽉 잡으라고 예언하는 장면부터 이야기 해야할 것이다.   그 점쟁이 노인의 말대로,   한재선은 살막과 무림맹과 마교 세력이 대립하는 틈을 타서 도주하다가 북해빙궁에서 잠시 외유나온 설화연을 만난다.   그런데 이 녀석,   분명히 제 편을 만들라고 노인이 그랬건만 입술을 부벼대서 딱 색마로 낙인찍혀 버렸다.   설화연이 하는 말,   “자르겠어요.” 그 순간 독자와 한재선은 동시에 외치게 된다.   “뭘.....?” 이라고.   오 마이 갓.   3권에서는 한재선이 트렌스 젠더가 되어서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작가님의 넓으신 아량을 믿어봐야 할 시점이다.

 

 

4. 그래서 다시! 어깨에 힘 좀 빼고 같이 놀자! 따샤!

 

마감무림 1, 2권을 덮자 즐거운 만족감과 함께 촌부님의 의미심장한 미소가 따라붙었다.   그 미소는 화공도담을 덮으면서 본 촌부님의 담담한 미소와 다르면서도 많이 닮았다.   촌부님의 책은 그렇다. 보드랍고 정겨우면서도 항상 메시지가 울려나온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즐겁고 통쾌하게 웃다보면,   우리는 인연의 묘한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한재선이 저도 모르게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좋은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와 저도 모르게 좋은 영향을 주고 받았겠지.   이렇게 세상은 성근 하늘의 그물 아래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이리라.   역시 촌부님은 변하지 않았다.   고양이가 강아지로 변해도 똑같이 귀여운 것처럼.

이제 촌부님의 초대장인 책 두 권을 쥐고 우리가 기다려야 할 차례가 됐다.   촌부님이 펼치는 한재선의 마감도피행이 3권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꼬일 대로 꼬인 3세력의 알력,   성천 세력의 목적과 뒷사연,   한재선과 설화연의 귀여운 다툼이 차례대로 풀려나올 것이다.   나와 독자들이 할 일은 촌부님이 3권을 들고 오시면 같이 놀아드리고,   또 힘껏 응원하는 것이리라.   그런 고로 응원의 메시지를 외쳐본다.

 

“촌부님! 왕후장상이 와도 마감은 하셔야죠!”

“담당자님! 항아리 하나 선물해드릴게요!”

 

.......어라?   이런.   본심을 말해버리다니.   순간 흑사자 이도경이 빙의했던 것도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