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산적왕? 아니죠! 그는 폭풍의 제왕입니다.>


 표리부동이라는 말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이다. 나는 책을 볼 때, 겉표지를 먼저 살핀다. 거기서 일단 선입견이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폭풍의 제왕은 달랐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소설이었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정말 콴은 폭풍과도 같은 놈이구나.’였다. 그 자신은 잔잔한 표면을 가진 깊은 수심의 호수,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들판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있는 고목과도 같지만 그의 주변은 항상 상상도 못할 일들로 들썩이고 있다. 태풍의 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겉과 속이 이렇게나 정직하게 맞아떨어지는 소설은 오랜만이었다.


 여기서 나오는 콴은 단순히 산적들의 왕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사내다. 처음에는 주인공이 산적이라고 하기에 나는 식겁을 했다. 그러면서 일반적인 산적의 인상을 머릿속에 떠올려봤다.


 얼굴을 뒤덮은 턱수염과 커다랗고 미련한 덩치. 푸줏간에서나 쓸 법한 대도. 그리고 초기 판타지 소설에서 나오는, ‘흐흐흐, 내가 돈이 좀 궁한데 말이야’하고 운을 띄우고 나와서 항상 주인공 일행들에게 사정없이 두들겨 맞는 지극히도 하찮은 존재.


 그것이 내가 떠올린 산적의 모든 것이었다. 물론, 주인공이니만큼 다른 산적과는 다를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이건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이렇게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한 사람이 산적이라니 믿을 수가 없던 것이었다. 나중에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겠지만 콴의 무위는 자신의 스승이자 대륙 제일의 기사인 헥토르 공작과도 무리 없이 싸울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다른 산적과는 달리 화전민들을 괴롭히지도 않고, 제국의 영주들보다도 더 영주답게 자신들의 영역에 있는 화전민들을 보호해왔다. 그리고 그에 응답이라도 하듯, 산적 토벌을 꾀하는 제국의 유화책으로 몇몇 화전민들이 회유를 당해 산 아래로 내려간 후에도 기존의 화전민들은 끝까지 콴의 ‘그늘’에 남기로 결정하기까지 한다. 그럴 정도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카리스마가 그에게는 있다. 그런 무위와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 과연 평범한 산적왕으로만 남을 것인가? 그건 아니다. ‘폭풍의 제왕’이라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 그리고 콴이 가온 왕국의 왕의 피를 갖고 있듯 앞으로의 콴의 행보는 단순한 산적왕의 것이 아닐 것이다. 아직 소설의 초입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폭풍과도 같을 일보 일보를 떠올리고선 마치 내가 모험이라도 떠나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되었다. 소설의 말미에서 폭풍이 지나간 뒤의 파란 하늘을 보게 되는 순간, 그 아쉬움에 못 이겨 한탄이라도 하게 될 것처럼.


 <톡톡 튀는 캐릭터들을 잘 살린 소설, 폭풍의 제왕>


 사람의 인체를 가지고 비유를 하자면 주인공은 사람의 머리다. 그리고 각각의 조연들은 사지와 몸뚱이다. 보통 책을 많이 내지 않은 작가님들에게 보이는 실수가 바로 그 인체의 부조화이다. 왼쪽 팔과 왼쪽 다리가 동시에 앞으로 나가는 것이라든지, 머리가 너무 작거나 크거나 하는 그런 실수.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런 부조화가 눈에 띄지 않는다. 유쾌상쾌통쾌한 콴의 행동 하나하나가 두드러지는데도 그것이 도를 지나치지 않아서 보기 좋았다. 작가님의 전작을 찾아보면 강철의 열제 시리즈 하나뿐이지만 그 권수를 따지면 적게는 두 시리즈, 많게는 세 시리즈를 능가할 정도니 필력을 의심할 여지도 없다.


 서장에서 누군가가 언급한 것과 같이 거칠지만 행동에는 거리낌이 없고 자유로운 사나이, 마운틴 콴. 그리고 그의 머리를 맡고 있는, 난독증을 가진 산의 현자 탈라스. 존재감이 없는 평범한 사내지만 사무직과 보직을 오가는 멀티 플레이어이자 살수인 잭. 별명과는 어울리지 않게 순박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요리에 있어서는 산의 현자 못지않은 귀염둥이 돌곰(=스톤베어). 빤스빤스 타령을 하느라 미치광이로 오인 받지만 실은 대단한 충성심을 가진 전직 가온 왕국의 시종장인 바우 영감. 그 외에도 바다요정의 피를 계승하고 있는 바다 위의 꽃, 나르샤 등등.


 어떤 한 캐릭터의 이름을 떠올리면 바로 그 캐릭터의 특징이 제대로 살아날 정도로 이 소설에서는 캐릭터들이 약동하고 있다. 촌부 작가님의 마감무림에서도 그랬지만, 가우리 작가님의 폭풍의 제왕에서도 정말 놀라웠던 것이 바로 이 점이었다. 소설 속에서 빼내어 현실에 가져다 놓아도 그대로 움직일 것만 같은 감각이 살아있다는 것은 웬만한 소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점이 아닐 것이다. 이런 소설들을 근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접하게 된 것이 기분 좋기까지 하다.


 혹자는 이런 캐릭터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캐릭터들을 움직이는 것은 작가의 몫이다. 갓난아이에게 연필을 줘봐야 그 연필은 아이가 커서 공부를 잘하게 될 것이라는 돌잡이 물건으로서밖에 쓰이지 못한다. 하지만 학생에게 그 연필을 주면 그 연필은 공부를 하는 데에나 그림을 그리는 데에 쓰일 수도 있다. 어떤 물건이든 그것의 쓰임은 그걸 운용하는 사람에게 달렸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디카프리오, 당신이 없었더라면!>


 소설을 다시 읽어보다 문득 깨달은 점이 있었다. 나르샤와 살리반의 이야기에서 ‘산적과 해적이 만날 일은 드물다’는 식의 말이 나오게 되는데 그걸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그러했다. 콴이 산적 토벌 때문에 팔크스 산맥을 떠나야 하는 일이 필연적이었다고 해도 그들의 식구들을 실을 배로 해적선을 선택한 것은 대단한 우연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우연을 이끌어낸 대단한 인물이 누구인가? 얼굴에 X자가 새겨진 피안개, 디카프리오가 되시겠다!


 콴과 그의 일행들에게 매번 까이고 까이고 또 까이는 것이 일인 디카프리오라지만 그런 그가 없었다면 콴의 이주 준비는 매우 힘들어졌을 것이다. 우연찮게 항구에서 디카프리오를 만났기에 망정이지, 그를 만나지도 않았다면 애초에 가온 왕국까지로의 지도조차 쉽게 얻을 수 없었을 것이 아닌가? 해적단하고 마주쳐서 살아남은 콴의 패거리의 그 대단한 무위 덕분도 있겠지만 기회를 제공해준 것은 엄연히 디카프리오다. 동네북으로 전락한 피안개군에게 감사 인사라도 하고 싶다. 그리고 곧 서류왕으로 등극할 그를 기대해본다.




 위에서 콴이 산적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산적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산적이라면 보통 비겁하고 약자를 괴롭히는 악당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으니 말이다.


 본문에서 콴이 말한다. 빼앗기느니 차라리 빼앗겠다고. 그것은 비단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통용되는 것이라, 책임지는 것이 싫다고 말하는 그의 말과는 모순된다. 책임지기 싫어하는 그는 자신의 수하의 죽음 때문에 자신들에게 항복하려는 기사들을 잔인하게 죽였고, 자신의 그늘을 떠나려 하지 않는 화전민들조차 포용하여 산채의 식구들과 함께 가온 왕국으로 데리고 가려고 한다. 빼앗기기 싫어서 약탈한다는 점과 책임지기 싫어한다지만 책임감 하나는 끝내준다는 점에서는 그는 진정한 산적왕이 아닌가 싶다.


 이제 이야기는 이제 팔크스 산맥과 그 근처에서 바다로 옮겨졌다. 그리고 곧 가온 왕국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야기가 주인공인 콴의 일행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을 위해서 전개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 정세에 대해서도 독자들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게 한다. 사건에 주인공이 휘말린 것이지, 주인공을 위해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거부감도 들지 않는다. 주인공을 위해 쓰인 소설은 흥미가 없지만 이런 큰 움직임에서 균형을 잡으며 요령껏 제 길을 걸어가는 주인공에게 호감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역시 스승과 제자의 ‘자신의 불리한 부분을 감추는’ 과거 회상 장면이었다. 그 부분을 보면 할아버지를 여의고 스승과도 헤어져 여관주인에 의해 노예로 팔려버린 콴에 대해 연민을 느껴야 했지만 왜 웃음이 나왔는지 모른다. 너무 무겁지도 않고, 몇 페이지만 바로 넘겨도 웃음이 터지는 소설이라 즐겁게 읽기에도 좋다. 개그가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산적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대단한 콴과 그의 동료들의 능력에 대한 것이다. 콴과 스톤베어, 잭 등은 산적이라기에는 너무 강하다. 한 기사단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산적 두령이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리고 탈라스 같은 경우도 난독증이라는 장애물이 있지만 제국에서도 어느 자리를 하나 꿰찰 수 있을 정도의 인물이다 (공작 아들에게 주먹 날리고 산으로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그저 소년만화처럼, 마음이 잘 통하는 동료들끼리 만났다고 하기에는 설명이 너무 부족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아직 초반부분이기에 그들의 과거를 나중에 따로 언급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는 과연 18만에 이르는 대식구와 함께 가온에 무사하게 정착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귀족들의 왕이 아닌, 백성들의 왕을 구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 콴을 찾아온 바우 영감의 소망은 이뤄질 것인가?


 1권부터 유달리 떠들썩했던 콴 일행의 행보를 기대하며 이 글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