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작가의 글은 보는 맛이 있고 재미있습니다.


이전 작품과 다음 작품이 다르고 그 작가의 글을 읽어가는 맛이 있기 때문이죠. 장르소설을 오랫동안 읽어왔지만, 제가 아는 성장형 작가는 몇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수가 적습니다. 보통의 작가분들은 첫 작품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다음 작품에서 그러한 형식을 답보하거나 큰 변화를 만들어내지 않고 전 작품의 체계를 따라가기 마련이죠. 그리고 그것이 작가의 성장을 가로막습니다. 하지만 장백산 작가님은 그러한 작가분들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이셨죠. 작가분이 처음 작품을 썼을 때부터 차근차근 작품을 보아온 사람들은 알 수 있겠지만, 장백산 작가님은 다양한 스타일로 많은 작품에서 히트를 치면서 작가의 자신의 가능성을 크게 열었죠.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아직까지도 새로운 도전을 하고, 그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장백산 작가님의 새로운 도전이라는 항목은 장르소설계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검토해볼만한 대목인데, 이는 이 도전이 일어난 곳이 기존의 소설을 답습하는 형태가 많은 장르소설계이기 때문입니다. 장백산 작가님의 작품은 전작과 신작의 짜임새의 갭을 매우 크게 만들어서, 즉 성장시켜서 돌아오는 작가님이기 때문에 장백산 작가님의 작품은 전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번에 나온 신작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전작에 크게 구애되지 않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이러한 장백산 작가님의 장점은 제 나름대로의 생각으로는 기복이 심하다는 단점으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감무림의 감상문에서 언급을 했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검증된 다른 이야기들을 두고 검증되지 않은 절차를 밟음으로써 꽤나 큰 리스크를 감수한다는 것이니까요. 그건 작가로서도 독자로서도 작품의 호불호를 나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장백산 작가님의 이번 신작인 천검독보행에서도 이러한 점을 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 천검독보행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이냐고 제게 묻는다면 “그건 바로 신선한 '복수행'이다”하고 대답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이유는, 천검독보행은 여타 다른 복수행 무협소설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과는 조금 차별화된 이야기와 분위기를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복수행 무협소설들은 작품의 주인공이 복수라는 한 가지 일을 달성하기 위해서 작품의 이야기 전체가 복수라는 주제에 크게 짓눌리는 양상을 보여줍니다. 물론 무협소설의 복수행이라는 게 대부분 보통은 복수를 성공시킬 수 없는 거대한 세력이나 인물에게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복수했을 때의 그 통쾌함을 배로 늘리기 위해서 복수라는 주제 하나에 작품을 일체화시키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복수행 무협소설의 또 다른 단점이기도 합니다.


복수행 무협소설의 그런 분위기는 주인공이 언제나 자신의 몸에 강력한 살기를 두르고 다니고 누구도 자신과 연관되는 걸 싫어하고 다가오지 못하게 막는 것처럼 마치 복수라는 주제 하나만 존재하고 다른 요소들은 철저히 배제하고 무시되는 것과 매우 비슷합니다. 애당초 주인공의 성격이 그러니 다른 요소들이 살아나지 못하는 것이겠지만 천검독보행은 그런 기존의 복수행 이야기를 담은 무협소설들과는 많이 다른 느낌을 줍니다.


천검독보행을 손에 쥐고 집에 돌아와 작품을 감상한 제가 천검독보행을 보고 든 기분은 ‘이게 진짜 복수물이 맞나?’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앞서 열거한 복수행 이야기를 담은 무협소설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야기를 천검독보행이 보여줬기 때문이죠. 기존의 복수행 무협소설(앞으로 이렇게 칭하겠습니다 .일일이 치려니 의외로 귀찮네요.)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다른 요소들이 작품에서 살아났기 때문이죠. 주인공이 단순히 복수라는 감정에 휘둘려서 미쳐버린 다른 이야기들과는 다르게 천검독보행은 복수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고 주인공이 복수라는 감정 하나에 휘둘리기보다는 좀 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면서 복수행 무협소설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다른 요소들의 활성화를 보여주죠.

위선, 분노, 악함, 선함 등의 이야기로 기존의 복수행 무협소설들을 답습하던 수많은 복수행 무협소설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준 것입니다.


이러한 장점이 가장 부각되었던 부분은 1권에서 주인공이 자신과 연이 가장 깊게 닿아있던 두 가문의 멸문에 분노한 후에 조양장이라는 아늑한 장소로 돌아오는 장면에서였습니다. 복수행 무협소설들은 복수를 해야 하는 계기가 작중에서 발생하였을 때, 앞서 말한 것처럼 주인공이 분노 외의 다른 감정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아늑한 공간으로 돌아왔다는 장소 배경 자체가 다른 복수행 무협소설들에게서는 단순히 복수에 대한 허망함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부질없음을 깨닫는 장면으로써 사용되기에 아늑한 장소라는 배경 자체가 아늑함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주인공의 복수라는 관념을 독자들에게 확인시켜주는 장소로써 사용됩니다.


하지만 천검독보행의 주인공은 조양장으로 돌아온 후에도 복수라는 감정에 휘둘리고 사로잡혀서 다른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다양한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행동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복수만을 바라보는 다른 주인공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죠. 그것이 바로 천검독보행의 새로움이기도 하죠. 다양한 감정을 나타내고 다양한 요소를 살릴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평소에 복수물을 여러 가지 편견과 경험에 의해서 보기 싫어했던 사람들도 천검독보행은 볼 수 있을만한 여건이 갖추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로써 제가 바로 천검독보행을 잘 보았다는 점이 있지 않습니까.


다만 천검독보행의 새로운 시도는 다른 말로는 기존의 복수물을 재미있게 보던 복수행 무협소설의 기존 독자층들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은 형태입니다. 아직 그 팬층이 진정 천검독보행을 잘 받아들일지의 여부는 아무도 모릅니다. 새로운 시도라는 관점에서 돌아본 천검독보행이라는 소설은 정말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격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새로운 변화가 좋았는가?


천검독보행의 장점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습니다. 다른 요소들을 살릴만한 공간적, 그리고 분위기적 여유가 생겼다고요. 하지만 그것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본 천검독보행의 단점으로는 천검독보행은 복수행이라는 천검독보행의 주된 이야기의 흐름과 일상 무협의 흐름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간격을 두고 말입니다. 복수행 무협소설의 특유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 천검독보행의 주인공은 너무 감정의 표현이 다채롭고 그리고 일관성이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속을 알 수 없지요.

에피소드마다 펼쳐지는 주인공의 기행과 만담에 가까운 대화들은 ‘과연 저 인물이 복수를 행하려고 하는 사람일까?’ 이러한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리고 복수와 일상 에피소드의 부조화는 곧 원래는 두 흐름이 조화를 이루며 한줄기로 엮어 가야하는 천검독보행의 이야기를 마치 따로따로 풀어버린 것처럼 느껴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주인공이 감추어진 실력과 일상 에피소드에서의 모습은 마치 강호초출의 은거기인 같은 면모를 보입니다. 이는 복수행 무협소설에서는 쉬이 찾아보기 힘든 분위기이고 제가 읽은 복수행 무협소설들 중에서는 없었던 모습입니다.


이는 기존의 복수행 무협소설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는 낯선 감각이죠. ‘비정하고 무정해야하는 복수행 무협소설에서 달콤한 분위기와 일상 에피소드가 부각되다니?’하고 말입니다. 실제로 기존의 복수행 무협소설을 읽었던 적이 몇 번 있던 저마저도 이러한 느낌을 지우지 못했으니, 저보다 복수행 무협소설들을 좀 더 많이 즐겨 읽으시는 분들의 반응은 어떠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이런 것처럼 새로운 짜임새와 성장은 장백산 작가의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비칠지 모르고 이러한 점은 작가의 기복이 심하다고 느낄 수가 있죠. 보통 작가와 독자는 취향을 따라가기 마련이고 기존의 독자층에서 크게 바뀌거나 변동되지 않지만 장백산 작가님은 그게 아니니까요.


저로서는 천검독보행의 새로움과 다채로운 감정이 주인공에게 존재하고 그 감정으로부터 생기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 때문에 즐겨 읽을 수 있었던 소설이지만, 복수행 무협소설의 비정함과 분위기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복수행 무협소설을 편견 때문에 보지 못했던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면 편견을 깰 수 있을 만큼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좋은 책이었고 오랜만에 복수행 무협소설을 읽어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