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의 요구와 상품으로서의 책>

 

 

지금 막 나는 적룡왕이라는 책을 읽은 참이다. 안다, 나의 또 다른 글과 서두가 같은 것을. 참아달라. 누구에게나 불평의 레파토리는 적을수록 좋은 법이다. 나는 이미 송인이라는 나쁜 남자를 지면을 통해 만나본 참이지만 오엔 역시 그에 뒤지지 않는 나쁜 남자이다. 어떤 여자들은 나쁜 남자를 보면 투덜거리고 불평하면서도 호기심을 갖는 버릇이 있다. 나 역시 그런 버릇이 있어서일까, 나는 우선 오엔을 더듬어보기로 했다. 오엔은 송인과는 달리 더듬어보면 나를 반 토막으로 만들어버릴 듯 하지만 모르는 데에서는 임금님도 까이는 법이니 뭐 어떻겠는가?

 

 

우선 오엔은 캐릭터라는 시점에서 볼 때 이해하기 그닥 어렵지 않을 정도로 평면적이었다. 일단 오엔 자체의 성격에 기복이 적은 편이다. 전생과 후생의 성격을 대비해 보기에는 전생에 대한 언급이 의외로 적어 비교해보기가 힘들다. 그리고 변화 이전의 성격 역시 작가의 직접묘사와 간단한 에피소드로 되어 있으므로 독자가 오엔의 성격 변화를 굳이 추론하지 않아도 된다. 아예 변화 이전의 장면을 삭제하거나 한 문단 정도의 설명만 곁들여 있어도 글 전개에 별다른 영향이 미치지 않을 듯 했다. 사실 오엔이라는 캐릭터의 성격은 전생의 적룡왕, 현생의 오엔, 전생을 각성한 오엔 세 가지로써 사실 다면적이라면 상당히 다면적이고 복잡해질 수 있음에도 대부분의 대사와 에피소드로 표현된 성격은 전생을 각성한 오엔으로써의 성격 뿐이다. 그리고 전생을 각성한 오엔의 성격은 매우 직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자아는 확실하며 좋고 싫음 역시 확실하다. 그리고 절대 주변인물에게 시시콜콜히 설명하지 않는다. 작가의 직접제시로 오엔의 성격과 사고가 몇 문단 제시되어 있으나 그것은 작가의 생각이며 독자는 오엔의 캐릭터를 스스로 파악할 자료가 없다. 따라서 독자는 현재 오엔의 성격이 매우 강인하고 잔인하다는 것은 알 수 있으나 그것 이상 추론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그는 전생에 많은 번뇌와 갈등을 이겨내고 나름대로의 성격이 완성된 상태이다. 그의 성격은 앞으로의 사건 전개 중에서도 크게 변화하지 않을 듯 하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사건전개 중 오엔이라는 남자는 다양한 모습 대신 뚜렷한 자기주장을 할 듯 하다. 아쉽게도 독자는 전생의 오엔의 성격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다면성을 가지고 있는지 탐구할 수 없다. 그는 전생의 목표를 현생에서 이어가느라 바빠서 독자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장치라면 3권에서 광왕으로써의 에피소드를 기대해 볼 수도 있겠으나 2권까지만을 기준으로 잡으면 오엔은 아직 과거를 미주알고주알 돌아볼 생각도 성격도 아닌 듯 하다. 그리고 강인하고 번뇌하지 않는 캐릭터는 원래 외적 갈등을 전개하기에는 유리하나 내적 갈등을 드러내기에는 불리한 편이다. 그리고 내적 갈등은 외적 갈등보다 캐릭터의 다면적인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데 쉬운 편인데 오엔은 비록 잔인하기는 해도 자아의 내적 통합은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이상을 볼 때 오엔이라는 캐릭터는 상당히 평면적이다. 즉, 간단하다.

 

 

이 캐릭터의 평면성은 서사의 간단함으로 이어진다.

2권까지의 이야기 전개 역시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오엔의 목표는 명확하다. 전생의 적룡왕으로써 이뤘던 것을 다시 이뤄내는 것이다. 그는 농노로 태어났다는 것 외에는 상당히 우수하다. 명확한 인생 목표와 상당한 양의 경험, 그리고 지식. 내적인 면으로 보자면 엄친아라는 것에 가깝다. 농노로 태어났다는 것으로 성장하는 면모를 보여주고자 했으나 사실 그는 단연코 엄친아다. 전생 점을 보면 플라나리아였다고 나오는 나 자신이나 전생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과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그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전생을 자각했으며 현생의 자신이 전생의 자신을 방해하지 않고 완전히 사라져주는 행운까지 겸비했다. 그러므로 오엔의 행보, 즉 적룡왕의 서사는, 우수하고 뛰어나지만 가난한 사람이 입신양명하는 전형적인 이야기와 그다지 다르지 않아 상당히 쉽고 빠르게 이야기를 더듬어나갈 수 있다.

 

 

주변인물은 어떠한가? 친구, 적, 가족, 아군. 오엔은 전쟁 중에 살아왔다. 전쟁만큼 인간관계를 단순화시키는 것이 어디 있으랴. 오엔이 주변인물을 나눌 때 저 위의 네 카테고리 외의 어떤 것을 이용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물론 2권까지의 기준이다. 친구는 자원이다. 유능할수록 좋다. 오엔 자신만큼 유능하지 못하다면 스스로 떨어져 나갈 테니, 오엔 스스로는 나중을 생각해서 친구가 알아서 성장해주기를 바라는 듯하다. 적은 말살해야 한다. 오엔의 적들은 대부분 명예나 친절, 혹은 인간적 사정은 제시되지 않은 채 오로지 악행과 악덕만을 보여준다. 적은 마치 사격 훈련장의 인간형 사격목표처럼 당연히 말살되어야 하며 오엔이 그들을 죽일 때 독자가 아쉬움을 느끼거나 동정적이어야 할 여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독자는 스스로 심각한 도덕적 딜레마나 내적 갈등을 느끼지 않고 악당의 파멸을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다. 가족은 보호 대상이다. 오엔은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연민을 느끼며 오엔의 성격에서 의외의 면모 - 다면적인 부분을 섬광처럼 찾아볼 수 있다면 바로 가족을 대하는 태도에서이다. 그러나 가족은 오엔에 의해 숨겨져 이미 중심 줄거리에서 멀어졌다. 아군은 협력하거나 이용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2권에서 오엔의 아군은 여인 한 명과 암흑가의 집단 뿐이다. 아직까지 아군과 오엔 사이의 관계가 서사에 어떤 다층적인 구조를 만들어 줄 수 있거나 혹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2권 기준으로 확실한 것은 오엔의 아군을 대하는 태도는 상당히 명확하다는 것이다. 각설하여, 불가근불가원. 데일만큼 가까이 가지 않고 추울 만큼 멀리 떨어지지도 않는다. 이렇듯 2권까지의 내용으로 보면 오엔과 주변인물간의 관계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 전개 역시 상당히 간단하다.

 

 

그렇다. 적룡왕은 간단하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적룡왕은 전혀 문학적이지 못한 글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간단하면, 나쁜가? 물론 적룡왕은 세계문학전집에 들어갈 글은 아니지만 그러면 '나쁜 글'인가? 현실적이고 생생하면서도 참신한 캐릭터,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구조를 가진 서사,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아이디어로 넘치는 이야기, 허를 찌르는 반전과 세계 창조를 방불하게 만드는 설정까지 갖춘 글. 그렇다, 이런 것들을 가지면 보통 좋은 글이라고 한다. 이 반대면 나쁜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글에 대한 오해이다. 그렇지 않다. 나쁜 글은 목적에 맞지 않는 글이다. 한 줄을 써야 할 곳에 열 줄을 쓰면 그것이 나쁜 글이다.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데 사르트르를 잘못 언급하면 그 편지는 잘난 체 하는 불쾌한 낙서가 된다. 적룡왕이라는 글의 목적은, 아니 현대 환상소설이 아닌 '환타지 소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만족에 있다. 그렇다면 적룡왕의 예상 독자는 누구이며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적룡왕의 만듦새를 보면 예상 독자 역시 알 수 있다. 여지껏 살펴보았듯이 적룡왕의 만듦새는 '간단함'이다. 그렇다면 이 글을 쓴 작가는 간단하게, 즉 문학적인 서사 분석이나 심도 있는 캐릭터 이해는 제쳐두고 스스로의 흥미에 이끌려 이야기를 즐겨줄 독자를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볼 수 있다. 적룡왕의 타깃은 바로 독자의 솔직한 욕구이다. 누군가에게 비굴하고 싶지 않았으나 현실에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만한 오엔을 보며 감추어두었던 나를 만족시킨다. 그의 방약무인함에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으나 마음 속 어디선가 슬그머니 엊그제 밤새워 작성한 보고서를 허공에 내던진 박 부장이 데칸의 모습에 겹쳐지는 것이다. 오엔이 터무니없이 높은 목표를 추구하며 거침없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시집이나 가야겠다는 백조 아가씨는 쓴 웃음 속에서도 잠시 위로받을 수 있다. 그의 잔인한 전쟁을 보면서 손등에 잇자국이 나도록 물어 뜯어가며 공부하던 누군가는 자신을 파괴하는 대신 상상 속의 전장에서 파괴욕구를 만족시킨다. 이러한 독자들은 캐릭터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싶어서, 설정과 서사를 음미하고 반전에 기분 좋게 놀라기 위해 적룡왕을 집어든 것이 아니다. 오엔이라는 캐릭터는 이해의 대상이 아닌 동경의 대상이다. 그래서 그는 평면적일지언정 멋지고 잔혹하며 강한 면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의 행보는 설정과 서사보다는 독자의 욕구를 민감하게 더듬어간다. 고객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그것은 문학보다는 상품 쪽이 더욱 짙게 가지고 있는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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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으로써의 문학이 어떠한 방법으로 현대의 지나친 저평가에서 벗어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적룡왕을 포함한 일부 환타지들은 문학의 잣대보다는 상품의 잣대로 가치매겨져야 할 듯하다. 좋은 상품을 만나 잘 소비하였다. 이 <적룡왕>은 문학이기보다는 고객의 니즈를 배려한 좋은 상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