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세게 운 좋은 그 놈의 무림 활극, 마감무림>


 그렇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 소설의 주인공인 한재선은 정말 억세게 운이 좋다. 악운도 운이라고 친다면 말이다. 그저 글을 잘 쓸 줄 아는 학사가 전혀 연이 없는 무림의 일에 말려들 확률은, 무림맹과 마교에게서 하루의 차이로 의뢰를 받게 될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모든 판타지 소설과 무협 소설들이 그렇듯, 주인공들은 모두 어떤 능력을 한가락 갖고 있게 마련이다. 다른 소설들의 주인공들이 마법이나 검술에 대해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글을 쓸 줄 아는 능력과 억세게 좋은 운을 능력으로써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권 후반에 가게 되면 한재선이 세 가지 기연으로 인해 얻은 능력을 조금씩 발휘하는 장면도 나오게 된다. 하지만 그 기연을 얻은 것도 억세게 좋은 그 운 때문이다. 본인은 마감을 피해 도망만 치고 다녀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고 있지만 본문에 나오는 최유찬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정말 ‘복에 겨운 놈’이다. 무림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질투를 받아서 집단린치를 당해도 쌀 놈이다.


 본래 기연이라는 소재를 좋아하지 않기에 한재선이 운악산에서 노인을 만난 것, 신단비고의 영약들을 먹어치운 것, 성화를 쬐게 된 것의 세 가지 기연이 나오게 되자 속으로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주인공도 운으로 뭐든 거저먹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취향의 차이이기도 하겠지만 내게는 약간의 흥미 감점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렇지만 반감이 들지 않았던 것은 적절하게 이야기의 흐름을 안배한 작가님의 숙련된 필력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재선의 도주만을 중심으로 그 기연에 대해서 이끌어가지 않고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사이사이에 배치하여 나름의 설득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색이 독특한 각각의 인물들의 이야기가 지저분하지 않게, 제자리에 제대로 자리 잡고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깔끔함이 마음에 든다.


 <섞이는 법 없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인물들의 놀이판, 마감무림>


 마감무림은 참으로 유쾌한 소설이다. 책을 읽다보면 책의 절반을 다 읽어가도록 웃음이 나오지 않는 소설도 있고, 책의 초반부터 웃음을 터트리게 되는 소설이 있는 법인데 이 소설은 후자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을 박장대소했는지 모르겠다. 이 웃음은 인물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주인공인 한재선부터가 그러하다. 학사라는 자가 거짓말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쉽게 하고 허세는 어찌나 그렇게도 센지 모르겠다. ‘도대체 무엇을 믿고?’라는 의문이 들지만 1권 초반에서의 첫 등장에서의 모습을 보면 그저 순간의 여세에 몸을 맡기는 것 같다. 그리고 그는 비굴하며 약삭빠르다. 목숨이 위험하다 싶으면 망설임도 없이 굽실거리는 그 태도는 참 신기하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이런 주인공이야말로 가장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게를 잡는 차가운 도시남자 같은 주인공은, 같은 남자가 보면 밥맛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재선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은,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조연으로 나올 법한 인물이 마감무림에서는 당당하게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외에도 담당자로서 눈을 뜨게 되어 마감이란 말을 달고 살게 된 비운의 무당파 도사, 운풍자와 청출어람 청어람이라고 흑사신보다 더 악독한 수를 생각해낸 최유찬(땅에 파묻고 마감을 시킨다고 했던가), 식물에 대한 사랑에 눈을 뜬 목괴 어르신, 본래부터가 지독한 담당자였으나 은근히 순진하신 흑사신 어르신까지…!


 인물을 잘 외우지 못하는 나로서는 신기한 일이었다. 각각의 주요 인물들을 기억하게 되는 기연이 나에게도 찾아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그것은 기연이 아니고 인물들의 특징을 잘 살려서, 그 인물들을 놀이판에서 신명나게 놀게 하신 작가님의 역량 덕분이지만.


 섞이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유쾌하게 놀고 있는 이 놀이판을 보고 그 어느 누가 웃지 않을 수 있으랴? 감히 그렇게 속단해본다. 실제로 2권에서의 ‘개판’이라는 소제목을 단 부분의 내용은, 내가 봐도 개판이었다. (욕이 아닌 건 아시죠?) 난장판도 그런 난장판이 없다. 그야말로 도그 파이트의 절정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부르는 소설, 마감무림>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라는 나비효과에 대해서는 누구든 들어봤을 것이다. 마감무림의 내용은 그 나비효과가 무엇인지 알려주겠다는 것처럼 작은 일 하나가 큰일을 불러일으키고, 아무렇지 않게 했던 일이 의외의 결과를 일으킨다. 이중계약을 맺은, 마감을 피하려는 학사 한 명이 무림을 이렇게나 떠들썩하게 만들 줄 누가 알았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어떻게 하면 일을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데에는 도가 텄다고 할 수 있다.


 굶주렸던 한재선이 착각하여 우걱우걱 먹은 그 ‘벽곡단’이 영약이었던 것 때문에 신단비고가 털렸다고 하면서 무림이 들썩이고, 한재선을 쫓다가 목괴 어르신이 마교의 무리와 마주쳐서 결국 마교가 움직이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한재선이 단지 최유찬에게서 도망치려고 ‘제 3의 무리가 신단비고를 털었다’라는 거짓부렁을 했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기에 한재선은 살막에 의해 목숨의 위협까지 받게 된다.


 본문에서 나온 것처럼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무림을 어지럽힌다고 할 수 있다. 마감을 피하려는 작은 몸부림 하나가 이렇듯 큰 움직임을 만들어냈다니……. 한재선에게 감탄할 수밖에 없다.


 <작가의 고뇌를 소재로 승화시킨 소설, 마감무림>


 소설을 보게 되면 마감을 암흑의 구렁텅이라고 비유하는 장면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마감이라는 말에 진저리를 치며, 같은 처지의 동료끼리 술잔을 주고받는 모습은 그것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을 빼게 만든다. 작가라는 꿈을 품고 있던 사람마저도 손을 내젓게 할 만큼 처절함의 극치다. 흥부전에서 흥부 가족의 가난함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데서 볼 수 있는 해학성이 이 소설에 숨어있다. 아니, 대놓고 나와 있다.


 그렇지만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은 작가님이 일상에서 접하고 있는 그 마감이라는 것을 소설의 소재로 이끌어낸 사고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학사에 대해 다룬 소설은 꽤 있었던 것 같지만 그 학사가 마감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친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담당자에 대한 두려움을 직설적으로 표출한 소설도 이게 최초가 아닐까.

 

 물론 소재가 좋다고 소설의 질까지 높아지는 것이 아닌 만큼, 그 소재를 잘 활용하여 이런 유쾌한 활극을 만들어낸 작가님의 역량에 나는 감탄했다. 이야기의 흐름과 인물들의 개성, 소재의 독창성을 잘 섞어낸, 비빔밥과도 같은 소설이다.


 항상 한 고비를 넘기면 한 고비가 보이고, 두 고비를 넘기니 세 고비를 넘겨야 하는 주인공, 한재선의 유쾌하고 발랄한 도주극의 양상이 기대된다. 주인공이란 무릇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법이다. 한동안 고생을 면치 못할 한재선에게 씁쓸한 위로의 말을 건네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재선아, 그래도 너는 나중에 미인 아내를 얻게 될 거야.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