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지에 싸여있던 돈뭉치 같은 소설, 천년무제>


 책을 읽기 전에는 항상 ‘겉’을 유심히 살핀다. 표지의 일러스트가 멋있거나 표지 뒤에 있는 책에 대한 소개를 보고 흥미를 느끼면 ‘속’도 기대하게 된다. 마치 포장지가 멋진 선물상자를 받은 것과 같은 기분이다. 그렇지만 표지의 일러스트나 책에 대한 소개가 별로면 ‘속’도 기대하지 않게 된다. 신문지에 구깃구깃하게 싸인 파 한 단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천년무제에 대한 첫인상은 별로였다. 일러스트는 괜찮았지만 뒤에 있는 소개가 그저 그랬기 때문이다. 자면서 내공을 쌓는다느니, 주인공이 미꾸라지라느니 하는 표현이 은근히 거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대도 하지 않고, 독후감이나 쓸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 그런데 이럴 수가! 읽다보니 점점 책에 몰입하게 되었다. ‘별로’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월척! 대어 중의 대어였다. 책을 물고기로 표현하다니, 이 무슨 민폐인가? 하지만 정말 최근에 봤던 소설 중 가장 재미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위에서 ‘겉’과 ‘속’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천년무제는 ‘겉’에서 실망했지만 ‘속’에서 만족하게 된 소설이다. 마치 받은 선물이 신문지에 싸여있어서 ‘겉’에는 실망했지만 그 신문지를 까보니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원짜리 지폐가 20장이나 묶여있었을 때 느낄 법한 기분이다. (이런 선물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마는.) 앞으로는 표지와 책소개만으로 책을 미리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겠다는 반성까지도 했다. 사람은 겉만 보고 알 수 없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틀린 게 아니었다.


 <제 나름의 기준을 갖고 살아가는 주인공, 송인>


 나는 드라마를 볼 때 주로 ‘착한놈’과 ‘나쁜놈’으로 등장인물들을 구분한다. 그 구분의 기준은 꽤 잘 들어맞아서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등장인물이 나왔던 적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전에 읽은 소설인 촌부 작가님의 마감무림에서도 그렇고 이 천년무제에서도 그렇고, 소설에서는 그런 기준을 도무지 적용할 수가 없다.


 착하다, 고 생각하기에는 악당을 비롯해서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사람들을 많이 죽였다.

 나쁘다, 고 생각하기에는 사무현에서의 일도 그렇고 거지 꼬맹이를 구해준 일도 그렇고 마냥 나쁜 건 아니다.


 그래서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다시 읽어보니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송인은 제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주 ‘강단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 기준 중 하나는 ‘어린애에게는 관대하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에는 조건이 붙는다. ‘어린애라도 실패에서 뭔가를 배우지 못하면 얄쨜없다’는 것. 때문에 송인은 만두를 훔치다가 걸린 강래 꼬맹이를 살려줬고, 그 후에 강래 꼬맹이는 송인에게서 뭔가를 배워 그걸 제대로 활용해먹었다. 그렇기에 나중에 송인의 제자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것은 전국시대라는 난세를 살아가던 때, 어린 시절의 송인이 겪었을 일을 그 기준에 적용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대목이다. 혼란스러운 전국시대에 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팔렸던 송인은 온갖 일을 겪고 자라났을 것이다. 때문에 어렸을 때의 자신을 생각해서 ‘어린애에게는 한 번의 기회를 준다’는 기준을 만든 것이 아닐까.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 사람에게도 관대하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송인이 혼자서 활동했다기보다는 수하를 데리고 활동하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이 드러나는 대목이 등장한다. 게다가 군에서 활동하기까지 했다. (탈영했다는 말이 나오니까) 사냥을 한답시고 기사를 특기로 가진 것이 아니고서야 혼자서 말을 타고 활을 쏘면서 상대와 일대일로 싸웠을 리가 없다. 여럿이 싸우는 것에, 특히 자신이 선두에 서서 싸우는 것이 익숙하다는 말이다. 그런 정황을 보면 자기가 거둔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적에게는 얄쨜없다는 그 기준을 이해할 수도 있다. 난세에서는 적이 착하든 나쁘든, 일단 적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과 수하들의 생명이 위험했을 것이 아닌가.


 얼핏 보면 제멋대로고 안하무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난세를 살아야 했던 사람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명확하게 보인다. 무지막지하게 사람을 패고 죽이고, 무시하고 깔보는 듯한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난세’라는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천마의 삼보는 사실, 이미 썩은 것이 아닐까>


 2권에서 더욱 돋보이는 송인의 가공할 만한 무위에 질린 우리는 1권 초반과 2권 초반의 일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간과하고 넘어갈 뻔했지만 귀곡장에서 항상 만만하게 취급당하는 샌님, 상이령의 가족에 대한 일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기보다는 일말의 여지를 남겨놓은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상이령의 형인 상일령과 천마신교와의 관계에 대한 사건이 언젠가 갑자기 툭 튀어나올 수 있다. 천마신교가 그냥 단순한 엑스트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은근하고 조용하게 넘어갔지만 오히려 천마신교와 송인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작가님의 낚시일 수도 있다.


 굳이 그 근거를 대라고 한다면 역시 2권 초반에 나오는 할아범이 있다. 어떤 석실에 들어온 할아범은 팔공산을 모두 뒤졌는데도 천마의 무덤을 찾지 못했다고 하고, 천마더러 왜 속세로 다시 나오느냐고 한탄을 한다. 그런데 그 후에, 송인은 자신이 2천년 동안 자고 있던 석실에 누군가가 들어와서 뒤지고 간 흔적을 발견한다. 이게 작가님의 낚시가 아니라면 천마는 송인이고, 천마삼보는 송인이 석실에 갖고 들어왔던 야명주와 검, 천잠사로 만든 옷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천마의 친우들이 모두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로 강한 무위를 갖고 있었는데도 정파가 자리 잡고 있는 중원에서 그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면, 그들이 정파가 아닌 곳의 역사에는 이름을 남겼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상, 송인의 과거가 모두 밝혀진 것이 아닌 이상 앞으로 풀어나갈 이야기는 어느 정도 송인의 과거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면, 모든 소설이 다 그렇듯 주인공의 과거를 묻어버리고 그냥 지나가는 소설은 없기 때문이다.


 <흐름을 장악하는 작가가 독자를 장악한다>


 나는 기연이 주가 되는 소설, 처음부터 무지막지하게 강한, 산에서 은거하고 있던 주인공이 ‘하하하하’ 웃으면서 ‘말로만 협을 외치는 정파 고수’를 하나하나 쓰러뜨려가는 소설을 싫어한다. 하지만 천년무제에서의 송인은 처음부터 무지막지하게 강한 주인공이라서 ‘하하하하’ 웃으면서 수많은 적을 몰살한다. 그런데도 왜 이 소설에 이렇게 몰입을 하게 되었는지, 왜 주인공과 그의 귀곡장 패거리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에는 호감을 갖지 않았던 소설인데도 읽다보니 그 소설의 흐름에 같이 휩쓸려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책의 남은 부분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안타깝기 그지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책을 다 덮고 난 후, 나는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작가님께서 소설의 흐름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었다는 것을.


 소설을 읽게 되면 흐름이 간혹 어색한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아니면 너무 흐름이 급박하다고 느끼거나. 하지만 천년무제를 읽으면서 나는 흐름이 어색하다든가 급하다든가 하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예리하신 분들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단순한 독자는 한방에 훅 가버린다.


 2천년의 잠에서 깨어나서 삥을 뜯은 송인은 객잔에서 바로 사고를 친다. 그리고 바로 상소령을 만나게 되고 바로 흑웅방을 치러 간다. 그리고 흑웅방을 접수하고 귀곡장을 세운다.


 줄거리만 이렇게 나열하면 빠른 전개인데 책을 읽고 있으면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치고 들어오는 개그는 전투 장면 중에 나올 때에도 방해가 되지 않고 유쾌하다.




 책의 좋은 점만 줄줄 나열해놨지만, 걱정되는 구석이 있다. 소설에서 송인의 비중이 너무 크다는 사실 때문이다. 주인공의 비중이 작아서도 안 되지만 너무 커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몸에 이 이야기를 적용시키면 주인공은 머리와도 같은 것인데 그 머리가 너무 크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게 될 것이다. 위에서는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괜찮았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책을 읽는 동안에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지 책을 읽고 나서까지 그 느낌이 지속된다는 것은 아니다. 하나하나 되짚으면서 생각해보면 내가 ‘휩쓸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송인의 이야기만 중심으로 할 것이 아니라 송인의 주변 상황까지도 좀 더 언급한다면 이런 불균형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 같다. 지금까지 나온 무림맹이나 사패천, 천마신교 등의 인물들이 한 이야기들로만 현재의 상황에 대해 추측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 내성만 견고하게 쌓는 데에 열중하기보다는 외성도 견고한지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할 때다.